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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쇼트의 역사적 배경과 주인공 마이클버리 그리고 당시 한국경제에 대한 고찰

by correct and insured info 2024.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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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

"빅쇼트(The Big Short)"는 2015년에 개봉한 영화로,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의 동명 비소설을 배경 했다. 이 영화는 2007-2008년 금융 위기를 다루며, 금융 위기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와 이에 대한 몇몇 투자자들의 반응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주택 시장 붕괴 관련해서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주택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택을 구매하면서 주택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은행과 금융 기관들은 높은 이자를 기대하며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도가 낮은 차주에게 제공되는 고위험 대출)를 무분별하게 발행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주택 담보 대출로, 이는 대출자가 상환할 수 없을 경우가 높아 매우 위험했습니다. 이러한 대출들은 주택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가정하에 발행했습니다. 은행들은 이러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모아 채권으로 증권화했습니다. 이를 다시 다양한 등급으로 나누어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CDO)이라는 금융 상품을 만들어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팔았습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CDO를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신용 평가 기관들은 CDO와 같은 복잡한 금융 상품에 높은 등급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등급은 기초 자산의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위기는 2007년부터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대출을 상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대규모 연체와 압류로 이어졌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 자산으로 한 금융 상품의 가치가 폭락했습니다. 결국, 글로벌 금융 시스템 전반에 걸쳐 대규모 손실을 초래하며 금융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마이클 버리

마이클 버리(Michael Burry)는 영화 빅쇼트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입니다. 그는 2007-2008년 금융 위기를 예측하고 큰 수익을 올린 투자자입니다. 그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경제학과, 밴더빌트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습니다. 이후 신경학과 안과 전공 의사로 활동했으나, 투자에 대한 열정으로 2000년에 사이언 캐피털(Scion Capital)이라는 헤지펀드를 설립했습니다. 마이클 버리는 철저한 분석과 독창적인 투자 전략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는 금융 위기 이전에 주택 시장의 거품을 감지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을 인식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에 대해 공매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당시 대부분의 금융 전문가들이 상상도 하지 못한 전략이었지만, 버리는 주택 시장의 붕괴를 확신했습니다. 그는 여러 투자은행들과 협상하여 신용부도스왑(CDS)을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에 대한 보험을 구매했습니다. 주택 시장 붕괴 후, 그의 예측이 현실이 되면서 사이언 캐피털은 엄청난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이로 인해 버리는 금융 위기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그의 이야기는 마이클 루이스의 책 "The Big Short"와 이를 바탕으로 한 동명의 영화에서 다루어졌습니다. 영화에서는 크리스천 베일이 마이클 버리 역을 맡아 열연했습니다. 마이클 버리는 투자뿐만 아니라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경제 및 투자 통찰을 공유하며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금융 위기 이후 그는 사이언 캐피털을 닫고, 개인 투자자로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2020년대 초반에는 게임스탑(Gamestop) 주식에 대한 투자로 다시 한번 주목받았습니다. 마이클 버리는 비판적 사고와 분석력을 바탕으로 전통적 금융 시스템의 허점을 파헤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사례는 투자 세계에서 독립적 사고와 깊은 분석의 중요성을 시사합니다. 

당시 한국경제 상황에 대해

영화 빅쇼트의 배경시간은 2007년으로 한국 경제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자 도전의 시기였다. 이 시기의 한국 경제는 외부의 금융 위기와 내부의 구조적 변화를 겪으면서 성장과 불안정을 동시에 경험했습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전반적으로 안정된 성장세를 유지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약 5%를 기록했다. 이는 2000년대 중반의 평균 성장률과 유사한 수준이었다.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은 수출이었다. 반도체, 자동차, 전자제품 등의 주요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며 수출이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신흥 시장으로의 수출이 크게 늘어났다. 2007년에는 원화 강세를 유지했다. 이는 한국의 수출 기업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지만, 해외 원자재와 에너지 수입 비용을 줄여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1,000원대 초반으로 하락하면서, 수출 경쟁력이 다소 약화되었으나, 무역수지는 여전히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의 금융 시장은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나, 2007년 하반기부터 글로벌 금융 위기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발하며 전 세계 금융 시장에 충격을 주었고, 한국도 예외가 없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2007년 말 기준으로 약 2,500억 달러 이상의 외환 보유고를 유지하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인 금융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부동산 시장은 2007년에 과열 양상을 보였습니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주택 가격이 급등하며, 부동산 버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었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위해 다양한 규제를 도입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가계부채도 급증하였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경제의 안정성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즉 당시 한국 경제상황도 영화 극중 미국의 상황과 비슷하게 흘러갔다고 평가할수 있다. 부동산 시장은 과열되었고, 은행의 대출 규제는 완만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도 교훈을 가지고 부동산 대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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